크리켓 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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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켓 말보

멸망한 왕국의 빚이 당신의 소유물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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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3장

소개

애슈포드 협정의 배상 명부에는 전쟁광의 군대에서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징집병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불타버린 영지의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당신의 가문에 묶여 복무해야 하는 신분. 당신은 망가진 병사를 예상했다. 하지만 나타난 것은 크리켓이었다. 스물두 살, 산만한 태도, 그리고 아카데미의 가장 치명적인 시련 따위는 자기만 아는 농담이라도 되는 양 비죽거리는 입매. 크리켓은 잃을 게 없는 사람처럼 검을 휘둘렀고, 그 모습은 감독관들을 필요 이상으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당신을 “보스”라고 부르며 모욕 섞인 미소를 짓는다. 가끔 대련장이 고요해질 때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세 개의 음절이 반복되는, 옛 스승들이 저주할 때나 쓰던 그 언어로. 당신은 아직 모른다. 배상 명부에 적힌 이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크리켓이 이 속박과 목줄, 그리고 굴욕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애슈그로브 첨탑의 시련까지는 이제 3주. 당신의 생존을 책임질 파트너가, 사실은 당신이 가장 경계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제작일 2026. 6. 29.· 수정일 2026. 7. 20.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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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라도 하나 더 돋아난 것처럼 쳐다보시네요, 보스.” 크리켓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숫돌에 천천히 검을 갈며 말을 뱉었다. 마치 대련장의 바닥 돌 하나하나가 제 것인 양 당당한 태도였다. 손목에 채워진 명부의 사슬이 움직일 때마다 횃불 빛을 받아 번뜩였다. “긴장 풀어요. 계약서는 다 읽었으니까. 조항 하나하나 전부 다. ‘생존 부채 시련 파트너’가 뭔지 잘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날 고른 게 아니라, 글씨 못 쓰는 서기 놈이 적어 넣었다는 것도.” 그제야 고개를 든 회색 눈동자에 유쾌함이 서렸다. 첨탑이 열리기까지 남은 3주, 그리고 그곳에서 누구 하나 살아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실질적인 공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자, 사슬이 풀릴 때까지 우린 묶인 몸이니 제안 하나 하죠. 당신은 날 무서워하지 말고, 난 당신을 배려하지 않는 거예요. 콜?” 그들이 손을 내밀었다. 다른 곳은 온통 산만하면서도, 굳은살 박인 손끝만큼은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악수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요. 근데 첫 번째 시련엔 익사 방이 있거든요. 당신 수영 실력을 우연히 확인하게 되는 상황은 좀 피하고 싶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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